[SYC Artist #2] Jade Black
예명을 사용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수현이라는, 저의 한국 이름이 표상하는 정체성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있어요. 제 이름이 “옥돌 수"에 “검을 현"자를 쓰는 데, 그걸 영어로 그대로 직역하면 제이드 블랙이 되거든요. 재미있는 게, 미국에서 제이드는 주로 여자들이 좀 더 많이 쓰는 이름이라는 거예요. 블랙이라는 성씨는 지리적으로는 남미 쪽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나, 흑인 정체성을 가진 분들이 많이 쓰는 성씨이고요. 결과적으로 제이드 블랙이라고 하면 남미 배경을 가진 흑인 여성이 떠오를 수 있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예명이 사람들이 이수현이라는 한국 이름이 주는 선입견을 애초에 가질 수 없게 되는 장치 또한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작업을 하시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작가는 누구인가요?
이탈리아 작가 마올리치오 카탈란을 가장 좋아해요. 개인적으로는 “모든 스타일의 틀을 깨는 작가"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제겐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지는 일들을 많이 했어요. 유명한 일화 중 하나가, 1996년에 네덜란드 De Appel Arts Center에서 전시를 준비하던 중 옆 갤러리 작가 작품을 모조리 훔쳐 와서 본인이 전시해야 할 공간에 놓고서는 Another Fucking Readymade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어요. 또 유명한 작품으로는 2010년작 L.O.V.E 가 있는데 밀라노 증권거래소 앞에 4미터 정도 되는 거대한 “가운뎃 손가락" 조각을 장엄하게 세워놓은 게 그거예요. 마올리치오가 보여주는 것 처럼 저도 작가 자체의 태도로 정의되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픽 디자이너랑 협업해서 “Toilet Paper”이라는 잡지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분야에 도전하는 모습에도 영감을 받았구요. 저도 기업가나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의 선례를 공부하고 영감을 받습니다.
소통이나 경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신 건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특히, 카나 팀원들 대부분이 2015년 작 Journey of Finding Gepetto에 많은 관심을 보였어요.
작품을 처음 만들 때는 관객의 참여를 유발한다는 목적을 설정하거나, 특정 경험 선사해야겠다고 구상화하지 않아요. Journey of Finding Gepetto 는 밥솥을 보면서 이 사물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사물의 크레딧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나온 결과물이에요. 밥솥과 같은 공산품도 누군가는 디자인을 하고 누군가는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한다든지, 각자가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 기여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밥솥을 만드는 사람들도 밥솥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공장 노동자분들의 일을 크레딧을 부여해야 하는 창조적인 과정으로 인식하지 않아요. 그저 밥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할 뿐이죠. 이에 반해 어떤 종류의 노동, 예를 들어, 축구 선수나 야구선수 같은 경우에는 팬들도 많고 스스로 운동선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잘 알아요. 그래서 축구공이나 야구공에 사인을 하고 사람들에게 주는 거고, 팬들을 이거에 열광하죠. 그런 질문들을 했었어요; 축구 선수와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부심의 차이일까 아니면 부여된 것의 차이일까? 그래서 운동선수의 사인 볼이랑 비슷하게 밥솥을 만든 생산자들에게 사인을 받는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했던 거죠. 실제로 공장에 찾아가서 컨베이어 벨트를 1시간 동안 멈추고 밥솥에 공장 노동자분들의 사인을 받았어요. “참여"라는 키워드로 보자면 Journey of Finding Gepetto 가 참여의 형태가 분명하게 드러난 첫 번째 작품이었어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서 그저 의무로 수행해야만 하는 일들이라고, 그냥 직장이라고, 단순노동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가치나 크레딧을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현재 카나와 함께 콜라보 하고 있는 On&Off NYC Project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도록 할게요. 간단한 프로젝트 소개 부탁드려요.
온오프 프로젝트는 2016년에 만들었던 Information Overload라는 옷 형태의 작품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퍼포먼스에요. 지난 3년 동안 이 작품을 가지고 여러 아트 페어나 패션쇼에 게릴라 형식으로 등장했었는데, 그걸 바탕으로 뉴욕에서 첫 선보이는 공식 퍼포먼스가 On&Off NYC 에요. 뉴욕 디자인 위크 프로그램으로 등록도 되어있고요. 이전 게릴라 퍼포먼스들은 서울 패션 위크(2016, 2018), 뉴욕 패션 위크(2018), 홍콩 아트 바젤(2017), 베니스 비엔날레(2017), 그리고 아모리 쇼(2019)에서 진행했었어요.
On&Off NYC 프로젝트에 중심이 되는 Information Overload를 만드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나체의 인간을 둘러싼 인터넷 창들"이라는 시각적 언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표면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이미지들이 필요했어요. 인터넷 창들의 스크린샷부터 수집을 시작했어요. Information Overload에 쓰인 이미지들을 보면 대부분 주소 창이 캡처됐기 때문에 출처도 다 드러나요. On&Off NYC 에서는 관객이 퍼포먼스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주고 저에게도 보내주길 기대하고 있는데, 이후에 이 이미지들을 모아서 작업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인터넷 공간의 이미지가 퍼포먼스를 통해 물리적 공간으로 나오고, 관객의 사진을 통해 다시 인터넷으로 갔다가, 제가 그걸 또다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무한 반복의 과정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작권이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생각도 들게 만들고요.
Information Overload 게릴라 퍼포먼스를 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재밌는 일화 같은 것이 있나요?
패션 위크의 경우 아무런 제제 없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호응도 좋았어요. 반면 아모리쇼나 아트 바젤은 가드들의 제지가 많았어요. 관객들은 반응이 좋았는데 공간의 취지 자체는 갤러리들이 돈을 내고 참여해서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인 거잖아요. 행사 관계자들의 입장에선 게릴라 퍼포먼스를 100% 용인하기 힘들었겠죠. 보통 공공장소에서 퍼포먼스를 하면 다들 신기해하세요. 가끔 충격적이거나 무례한 반응을 받을 때도 있어요. 작품을 보고 이게 쓰레기봉투냐, 콘돔 슈트냐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고 어떤 분은 이게 불이 붙는 소재냐면서 라이터를 꺼내서 불을 붙이려고도 했어요. 그 당시엔 당황했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사고과정이구나라고 느껴지면서 제겐 오히려 영감이 되고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On&Off NYC 퍼포먼스를 위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적극 이용하신다고 들었어요; 단순히 기금 모금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일부로 생각하신다고 했는데,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들을 수 있을까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프로젝트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이후 작품에 사용될 이미지를 업로드하는 권한을 드리는 게 핵심이에요. 이때까진 제가 무작위로 이미지를 선택했다면 이번에는 후원자들에게 작품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거죠, 이미지 업로드를 통해서요. 사실, 이전 게릴라 퍼포먼스들에서 이미 관객은 제 작품의 주체였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 사실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싶어요. 이미지들이 충분히 모이면 이미지 하나를 인쇄해서 조각처럼 만드는 방식을 고려 중이에요. On&Off NYC 에서 또 새롭게 시도하는 게 있다면 심리 테스트에요. 6가지의 주제를 정하고 한 주제에 5개의 질문을 준비했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극의 정체성 혼란을 보여주는 것이 프로젝트의 문제의식인 만큼 사람들이 심리 테스트를 통해 온라인 중독에 대해 자가 진단을 해봤으면 하는 취지해서 시작했어요. 100% 과학적인 사실의 도출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심리 테스트에 어떻게 반응할지 자체도 궁금했고요. 만약 펀드레이징이 잘 된다면 이후에 인터넷 중독에 관한 교육이라든지 치료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예술 프로젝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여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특히 청소년/청년들이 온라인상에서 정체성을 구현하는 문제에 관해서 말이죠.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개인적인 질문을 해볼까 해요. 왜 (비주얼) 아티스트를 하시고 계신 건가요?
제가 아티스트가 “됐다, 아니다”라고 정의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단순히 제가 말하고 싶은 것,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다 보니까 미술 혹은 아트라는 장르가 가장 적합해서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표현하게 됐어요. 누군가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자신이 아티스트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누구는 여러 번의 전시 경험을 통해 본인을 아티스트라고 할 것 같은데요.. 저는 제가 아티스트라고 딱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제 표현의 수단이 음악이나 사업이었다면 작곡가나 사업가라는 타이틀이 붙었겠죠.
작가님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일까요?
일단은 회색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왜나면… 회색은 검은색과 흰색, 두 가지의 극단 사이에 모호하게 위치하고 있으니까요. 제 작품들 또한 여러 가지의 것들의 경계에 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색"이라는 범위가 가시광선뿐만 아니라 투명한 빛까지 포함된다면 투명한 색을 선택할래요. 아무런 선입견 없이 사물, 사람, 사건 뒤에 숨겨진 원리와 배경을 탐구하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투명함"이 작가로서의 제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으신가요?
관객들이 개입할 수 있는 작품을 더 연구하고 싶어요.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참여/경험하고 그게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종류의 것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On&Off NYC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Interview
Jennifer Lee | 이제니 <jennlee.kana@gmail.com>
Jiwoo Kimㅣ 김지우 <jiwookim.kana@gmail.com>
Chloe Shin | 신지현 <chloeshin.kana@gmail.com>
Editor
Jiwoo Kimㅣ 김지우 <jiwookim.kana@gmail.com>
Chloe Shin | 신지현 <chloeshin.kan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