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DB: 7.8/10 | Rotten Tomatoes 91%
*이 글은 영화의 러닝타임 17분 정도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당 시점까지의 스포일러는 포함되어 있지만, 핵심적인 스포일러는 미포함되어 있습니다.
같은 영화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영화가 됩니다. 열 사람이 보면 열 개의 다른 영화가 태어나죠. 모든 예술이 그렇듯 영화도 그러합니다. 그게 예술의 위대한 점이겠죠.
저도 영화를 볼 때 저만의 관점이 있습니다. 누가 옳은 건 없습니다. 애초에 답은 없으니까요. 다르단 건 오히려 좋은 겁니다. 모두가 영화를 보고 똑같이 생각한다면 얼마나 지루한 세상일까요. 그래서 제 생각을 먼저 밝히고 소통하려 합니다.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 역시 여럿입니다. 제가 해보려는 것은 영화를 ‘읽는’ 것입니다. 한 씬은 눈깜짝할 사이 지나가지만, 각 장면은 감독의 고심 끝에 나온 결과입니다. 찰나에 지나가는 씬을 음미하면, 감독의 생각이 보입니다. 저는 이렇게 영화를 ‘읽어 보려’ 합니다
네 번째 작품으로는 <미스 리틀 선샤인>을 골랐습니다. 리뷰를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제목에 대해 사소한 것 하나만 짚고 가려 합니다.
위는 이 영화의 영어 포스터입니다. 그리고…
위는 한국 포스터입니다.
두 포스터 모두,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면서도 가장 뭉클한 장면이 어느 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도대체 어떤 장면인지, 왜 이 장면이 영화에서 중요한 지도 알 수 없죠. 두 포스터는 언뜻 보기엔 완전히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다릅니다. 눈치채셨나요?
원작의 제목은 <Little Miss Sunshine>인데, 한국의 번역된 제목은 ‘미스 리틀 선샤인’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한국으로 영화를 들여올 때 어순을 바꿨네요. 추측으로는 이야기가 미인 대회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보니, 이를 강조하기 위해 ‘미스’를 앞으로 돌린 것이 아닌가 싶네요. 포스팅 안에서 제가 어순이 헷갈린다고 해도 너무 박하게 바라보지 말아 주세요 ^^
이런 식으로 한국으로 수입 배급하면서 이름이 변경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하지 않거나 직역이 쉽지 않은 이유에서죠.
예를 들어, 스웨덴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신비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Let The Right One In>은
<렛미인>으로 줄여서 개봉하였습니다. 물론 스웨덴 영화라 <Let The Right One In>이라는 제목 자체도 영어로 번역한 것이지만요.
<겨울왕국>의 원제는 <Frozen>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 고객층이 어린이들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경우엔 원제보다도 한국 제목이 더 멋진 경우로 보입니다. 제목 번역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영화의 첫 인상이 완벽히 달라집니다.
번역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진정한 선생님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키팅 선생님이 나오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사실 오역입니다.
영화 제목 'Dead poets society'를 '죽은 시인의 사회'로 한 번역이 오역이라는 논란도 있다. society가 '사회'라는 의미외에도 '협회'라는 뜻도 있으므로 제대로 하자면 '고(故) 시인 연구협회' 정도라는 것이다. 일부는 '시인이 죽은 사회'로 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즉 '문학정신이 죽은 사회'를 비유한 것이라는 것. 다 일리가 있지만 society를 '협회'가 아닌 '사회'로 번역한 것은 오늘날의 현실을 감안하건대 탁월한(?) 오역인 것 같다.
(source: 2020년 2월 12일, 아시아경제, [윤승용칼럼]죽은 시인의 사회? 시인이 죽은 사회?)
오역이긴 하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 라는 말이 뭔가 이해가 안 되어서 더 있어 보이는 훌륭한 제목이 된 것 같네요. <죽은 시인 연구 협회> 보다는요.
오늘도 말이 길어지네요 ㅎㅎ 그럼 제목은 이 정도 하시고 다시 오늘의 영화로 돌아가시죠.
포스터를 보면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습니다.
포스터를 보시면 선댄스 영화제 이야기가 두 번이나 나오죠. 많은 분들이 아시듯 선댄스 영화제는 가장 규모가 큰 인디 영화제입니다. 많은 영화들과 신진 감독들이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주목 받았죠. 영화제의 이름이 선댄스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영화제를 만든 사람때문입니다. 이 영화제를 만든 사람 중 한 사람은 스타 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입니다. 당시 그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선댄스 키드’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원제인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도 한국 제목과 전혀 상관이 없네요. 원제가 캐릭터 제목이다 보니,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부적절했다고 본 것 같습니다.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많은 감독이 발굴되었습니다. 그 중 아마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쿠엔틴 타란티노이겠죠. 타란티노 외에도 아래의 감독들이 선댄스를 통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제는 89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선댄스에서 상영된 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타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후 92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저수지의 개들>로 주목 받았으며 로베르트 로드리게즈, 리차드 링클레이터, 브라이언 싱어 등이 선댄스를 통해 빛을 본 감독들이다.
(source: 2001년 1월 25일, 동아일보, [해외영화계 뉴스]독립 영화의 축제, 선댄스 영화제란?)
<리틀 미스 선샤인> 역시 작은 인디 영화였지만, 선댄스를 통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이 영화의 공동 감독인 두 사람은 여전히 협업을 계속해나가면서 주류 영화에서 활약하고 있죠. 이 작품 이후 두 사람의 작품으로는
2012년 작 <루비 스팍스>와 2017년 작 <배틀 오브 섹시스 | 한국 제목은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이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기꺼이 추천 드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짧게 설명 드리면, <루비 스팍스>는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지 못하는 작가가 본인의 새로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이 실제로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리틀 미스 선샤인>에도 나오는 폴 다노가 나오며, 그의 실제 연인인 조 카잔과 연인 사이로 나옵니다. 조 카잔은 해당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쓰기도 하였습니다.
<배틀 오브 섹시스>는 실제 인물인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의 성대결을 다룹니다. 당시 <라라랜드> 이후 연기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엠마 스톤이 연기한 빌리 진 킹 캐릭터 뿐 아니라 남성 상대편이었던 바비 릭스의 캐릭터 역시 상당히 심도 깊게 다뤘습니다. 바비 릭스를 연기한 스티브 카렐의 연기야 두 말 하면 입 아픕니다. 곧 또 보게 될 것이기 때문에 차후에 그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하게 하겠습니다.
두 작품 모두 볼만한 작품이지만, 역시 두 감독의 대표작은 이 작품 <리틀 미스 선샤인>일 것입니다. 두 작품의 주연 배우 중 일부를 이 영화에서 만나기도 했네요. 그러면 본격적으로 작품으로 들어가 볼까요?
먼저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예고편을 먼저 붙입니다.
(Source: https://www.youtube.com/watch?v=wvwVkllXT80)
예고편에 나오는 첫 장면은 실제 영화에서의 첫 씬이기도 합니다.
첫 장면은 눈을 크게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죠. 눈만 보아도 얼마나 지금 보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지, 얼마나 선망하는지가 잘 느껴지네요. 안경에 보고 있는 것이 언뜻 비치기도 하네요. 과연 무엇일까요?
미스 아메리카를 뽑는 미인대회입니다. 왼쪽 상단에 보이는 표시로 보아 녹화를 해둔 것 같네요. 녹화를 해서 볼 정도이면 얼마나 이 영상에 관심이 많은지가 벌써 보이죠.
이 장면은 명백한 시점샷입니다. 티비를 보고 있는 눈을 먼저 찍은 다음, 그 눈이 보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식으로 하여 눈의 주인공이 티비를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식이죠.
다음 샷에서는 카메라가 좀 더 멀어지면서 상반신 전체가 보이는 미디엄샷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눈의 주인공이 어린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알록달록한 옷과 여자 아이의 포즈만 보아도 이 여자 아이가 얼마나 미인 대회를 동경하고 있는지가 보이죠. 조금은 이상하게 보이는 창문은 조명과 같은 효과를 주면서 활짝 핀 여자 아이를 비춰 줍니다. 마치 방금 우승한 미스 아메리카처럼 빛이 나죠. 이와 같은 조명 효과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창문일 겁니다.
여자 아이의 이름은 올리브입니다. 이 아이를 연기한 아역 배우는 아비가일 브레슬린 입니다. 벌써 14년이 지난 지금 이 아이를 훌쩍 자라 청년 배우가 되었습니다. 최근 작품으로는 <좀비랜드: 더블 탭>입니다.
많이 컸죠? ㅎㅎ
저번에 인상적인 아역 배우로 <피아노>의 안나 파퀸을 소개 시켜 드렸는데, 아비가일 브레슬린이 나온 김에 최근 나온 영화 중 아역 배우가 인상적이었던 영화를 하나만 더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바로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나온 브룩클린 프린스입니다.
너무 좋아하는 작품인 해당 작품에 대한 소개는 뒤로 미루더라도 이 아역 배우의 유명한 수상 소감 하나만 보여 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최고 아역 배우 상을 수상한 그녀는 깜찍한 수상 소감을 남깁니다. 벅찬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그녀는 마지막에 같이 후보에 오른 다른 배우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이렇게 말하죠. “존경하는 후보님들 이거 끝나고 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로 가요”
다시 영화로 돌아가,
카메라가 올리브와 미스 아메리카를 겹치는 순간, 배경으로 나레이션이 흐릅니다. 나레이션은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두 종류로 세상의 사람이 나뉜다고 하죠. 굉장한 흑백 논리를 기반으로 한 이 나레이션은 마치 자기 계발서에 나올 만한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장면이 바뀌면 정장 차림의 남자가 나옵니다. 뭔가 멋있는 말을 늘어 놓는 남자의 연설이 끝나자..
정작 교실에는 수강생이 몇 명이 없네요. 본인이 주창하는 이론만큼 위너는 아닌가 봅니다.
다음 우리가 소개 받을 사람은 열심히 운동 중인 청년입니다.
이 청년을 연기한 배우는 폴 다노입니다. 이 영화를 보시다 보면 굉장히 좋은 배우들이 한데 나온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폴 다노 역시 그 중 한 명이죠. 워낙 많은 출연작이 있는 배우이고 기억 나는 캐릭터도 많지만 가장 먼저 생각 나는 두 작품만 소개해보면,
비틀즈와 동시대에 경쟁했던 그룹인 ‘비치 보이스’의 중심이자 ‘서핑 USA’ 와 같은 명곡을 창작해 낸 브라이언 윌슨의 삶을 다룬 <러브 & 머시> 에서 나이든 브라이언을 연기한 존 쿠삭과 함께 젊은 브라이언을 2인 1역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직전 작품인 <옥자>에서
동물 보호 연합(?)의 제이를 맡았었죠.
이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는 중2병스러운 젊은 날의 폴 다노를 보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인물 소개가 계속되네요. 다음 장면은 누군가의 손이 클로즈업하여 보여지는데, 그 손은 마약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가 살짝 뒤로 가면 나오는 사람은…
의외로 노년의 할아버지네요. 목걸이에 간편한 티를 입은 모습이 뭔가 히피 같은 모습이죠? 이 배우는 알란 알킨입니다. 이 영화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할아버지 캐릭터를 보여주는 그는 이 영화로 본인의 (적어도 지금까지는) 유일한 오스카를 탑니다. 본 배우는 벤 에플렉의 <아르고>에서도 존 굿맨과 짝을 이루어 흥미로운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리틀 미스 선샤인>은 총 4개의 오스카 후보에 올라 2개의 오스카를 탔습니다. 당시 크게 알려지지않았던 감독의 비교적 작은 영화가 거둔 성적으로는 상당한 성적이죠. 알란 알킨의 남우조연상 외에도 각본상을 탔습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얼마나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죠. 이외에도 작품상과 방금 언급드렸던 여성 아역 배우 아비가일 브레슬린이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참고로 작품상은 그 해 가장 좋은 작품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가장 최근에는 <기생충>이 탔죠.
또다른 인물 소개입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초반에 인물을 별다른 개연성 없이 쭉 소개시켜 주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물들이 나중에 어떻게 엮어지는지는 인물 소개가 끝나면 바로 알게 되죠.
이번에는 차를 운전하는 중년의 여성입니다. 이번에도 인물보다 물체가 먼저 나오는데, 관객이 보게 되는 물체는 담배입니다. 통화 중인 그녀는 수화기 반대편에서 지금 담배 피냐고 묻자 태연하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죠. 통화를 통해 우리는 그녀가 병원으로 가는 중임을 알게 됩니다.
갈 길이 바쁘지만 이번에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배우네요.
토니 콜렛입니다. 최근에 <유전>이라는 공포 영화에서 가공할만한 연기를 보여준 적 있죠. <식스 센스>에서 주인공 꼬마의 엄마로도 나왔습니다.
<유전>은 포스터만 보아도 무시무시하네요… 후덜덜…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ㅎㅎㅎ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인물은 병원에 갇혀 있는 중년의 남자입니다.
이 남자가 나오는 첫 씬입니다. 순간을 캡쳐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죠. 인생에서 가장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얼굴을 하고 있네요. 매번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는 스티브 카렐이 이 영화에서도 시작하자마자 좌중을 휘어 잡습니다.
커리어 초반 그는 코믹 연기 전문 배우처럼 보였습니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죠. 이런 연기를 하던 배우가 지금의 위대한 연기자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2010년대의 그는 굉장하거든요. 몇 작품만 이야기해보면,
<빅 쇼트>에서 월스트리트 투자자 마크 바움 역과
<폭스 캐쳐>의 재벌 존 듀폰 역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가 오스카 후보에 오른 작품은 이 작품이 유일합니다만, 그가 언젠가 오스카를 타는 날이 꼭 있으리라 믿습니다. 중간에 있는 그가 그 전 사진들과 달라 보인다면 그건 실제 인물인 존 듀폰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코를 높이는 분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리틀 미스 선샤인>까지 합쳐 3개 영화에서 그는 비슷한 듯 하지만 뚜렷하게 다른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지금이라도 세 명의 캐릭터를 설명하라면, 확실히 구분이 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스티브 카렐의 캐릭터를 빚어내는 힘은 굉장합니다.
자 이제 등장인물들은 모두 나왔습니다. 그 다음 영화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 영화는 제목을 띄웁니다. 이제 인물 소개가 끝났으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겠다는 신호 같은 것이겠지요. 영화가 제목을 보여주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이 장면만 따로 만드는 사람을 고용하기도 하지요. 대표적으로 히치콕 영화들이 그랬습니다. 또 어떤 영화는 제목을 아예 보여주지 않기도 합니다. <아이리쉬 맨> 같은 영화가 그렇지요. 마틴 스콜세지의 가장 최근작인 <아이리쉬 맨>에서는 타이틀이 끝까지 나오지 않습니다. 원래 감독이 하고 싶었던 제목은 원작 책인데, 책 제목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아 결국 <아이리쉬 맨>으로 바뀐 것을 못내 맘에 들어하지 않아 감독이 소심한 복수로 제목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썰이 있습니다 ^^;;
이처럼 영화 제목을 보여주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이만으로도 예술이 되지요. 일례로 제가 애정해 마지 않는 유투브 채널 왓치 모조에서는 “Top 10 Opening Credit Sequences in Movies” 이라는 영상을 따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관심이 가시는 분은 보셔도 좋습니다.
(source: https://www.youtube.com/watch?v=RKlQ0XrLSYU)
병원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인물들 간에 조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샷을 보시면 남자를 의도적으로 구석으로 몰아 넣었죠. 우리는 두 사람이 남매 관계이고, 남자가 얼마 전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까 세상을 잃은 표정을 하고 있던 것이 과장이 아니었네요. 여자는 오빠를 집으로 데려 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집에서…
지금까지 소개되었던 모든 인물이 한데 모이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가족이었네요. 그들은 저녁을 먹습니다.
저녁은 총 6명이 네모 탁자에 둘러 앉아 먹습니다. 7분 가량 지속되는 저녁 식사 씬을 통해 관객은 이 가족이 얼마나 많은 갈등을 가지고 있는 지를 알게 되죠. 갈등은 단순하지 않고, 누가 누구와 이야기하냐에 따라 다른 갈등의 양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구도와 장면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많은 수고가 들어간 씬이죠.
먼저 전체를 보여주는 마스터 샷이 나옵니다. 가족은 친할아버지 – 아버지/어머니 – 외삼촌 – 아들/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자리에 마주 보고 있고, 할아버지와 손녀가 한쪽, 외삼촌과 조카가 다른 한 쪽입니다. 극 중에서도 실제로 친할아버지와 손녀가 매우 가깝고 외삼촌과 조카가 잘 통하죠. 마스터 샷 이후에는 갈등 양상에 따라 다른 구도의 샷이 나오죠.
처음은 마주보고 앉아 있는 부부입니다. 남편인 리차드의 오버더숄더 샷으로 찍혀 있는 이 장면을 보면 우리는 둘이 경제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외삼촌과 아빠 사이의 샷도 있습니다. 삶에서 승자와 패자만 있다고 믿는 아버지는 자살을 시도한 외삼촌을 루저로 보고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줄까 경계하죠.
아버지는 아들과도 갈등이 있습니다. 자신의 철학을 철저히 아들의 양육에 적용하고 있거든요. 아들은 그에 대해 무시와 반항의 중간 정도의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 측면에서 둘은 통하는 바가 있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서로를 잘 모르는 친할아버지와 외삼촌 간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친할아버지는 외삼촌이 게이라는 점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스크린 좌측에 할아버지의 옆얼굴이 보일랑 말랑 하네요 ㅎㅎ)
그리고 마지막 샷인 어머니와 딸입니다. 올리브는 이 가족에서 유일하게 누구와도 갈등이 없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모두 올리브를 사랑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려 하죠. 그렇기 때문에 흰 도화지와 같은 올리브가 누구에게 더 영향을 많이 받아 어떻게 자랄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엄마와 딸의 대화를 들어보면, 얼마 전에 올리브는 어린이 미인 대회에서 2등을 했습니다. 그 후 올리브는 매일 미인 대회 연습을 계속하고 있었구요. 그 때 미인 대회와 관련된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올리브는 전화기로 달립니다.
그리고 자동 응답기에서 알게 된 사실은…
이 장면만 보아도 올리브가 얼마나 큰 전율을 느끼고 있는지가 잘 보이죠. 어떻게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죠. 문제 많은 이 가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이상적인 가족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지만, 올리브를 모두 사랑하기에 올리브를 위해 주 대회로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바로 이 차로 말이죠. 포스터에도 나오는 이 차는 가족의 사정을 잘 보여줍니다. 문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낡은 차를 운전할 수 밖에 없을만큼 경제적으로나 심정적으로 가난한 상황이죠.
딱 봐도 좁아 보이죠? ^^;;
그리하여 먼 길을 떠나게 된 가족. 이 시점부터 영화는 명백한 로드 무비의 형태를 따릅니다. 로드 무비란 주인공들이 여행을 떠나게 되고 그 여행길에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느껴 여행이 끝났을 때 어딘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형태를 취하죠.
대표적으로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가 그렇습니다.
이외에 한 작품만 더 거론하자면,
아버지의 복권 당첨금을 타러 가는 부자의 이야기인 <네브라스카>도 참 좋은 로드 무비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강추 드립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에서는 미인대회로 가는 여정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를 겪으며 주인공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요? 그리고 이를 보는 우리 관객은 어떤 것을 느끼게 될까요?
그들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들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챙겨주며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Writer: Seil Kim I 김세일 <seil88.kana@gmail.com>